Full of gratitude

이제 2달만 지나면, 스타트업의 바다로 나온지 만 4년을 채웁니다. 지난 4년 동안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다양하게 겪다보니 오히려 여기 저기에 난 상처가 훈장이 되어 조금의 자신감도 생기고, 한편으로는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나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 모든 것들을 거치면서 돌아보는 올해의 마지막, 그리고 내년에는 그래도 한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아직 놓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전부다.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을 만나고, 만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요한 연결도 사람을 통해서, 중요한 결정과 기회도 사람을 통해서 잡을 수 있었습니다. 팀을 구성하거나 신규 고객을 획득할 기회도, 새로운 분을 모시거나, 투자를 받거나.. 모든 성장의 기회는 사람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모든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편이지만 – 그래도 수퍼파워가 생긴다면 – 사람을 볼 수 있는 (a winning horse) 통찰력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에 이야기할 것처럼 세상에 사람은 많고, 또한 사람들은 각 개인별로 너무나 다르니까요.

또한, 사람의 능력보다는 ‘그릇’을 통해 더 많은 깨달음을 얻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지난 4년간의 여정에서 정말 감사하게도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많은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고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만, 여전히 갈증이 납니다. 특히, hard skills vs. soft skills에 대해서는 완전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능력(hard skills)이 사람의 그릇(soft skills)이라는 것에 물을 담는 국자라면, 능력을 통해 그릇에 물을 빠르게 담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 그릇을 넘치도록 담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즉, 빠른 성장을 할 수는 있겠지만, 한계에 부딪히는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친한 친구 중의 하나는 그릇조차도 성장시킬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긴 하였지만, soft skills의 대부분은 그것을 연마하는 과정 가운데 skill이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 실제 성장하진 않습니다. soft skills의 대부분이 non-teachable이라고 여겨질만큼 오랜 기간의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쉽게 측정하기 어려운 분야이기에 성장한다고 보여질 때에도 실제 성장한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각자가 가진 스킬셋이 모두 소중하고 의미있기에 유방은 유방의 역할이 있었고, 한신은 한신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겠지만요.

 

사람은 각기 매우 다르다.

하늘 아래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없는 것처럼, 하늘 아래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스타트업에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기보다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이 보통 강한 에고를 지닌 분들이 많기에 더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heterogenous한 것을 강조하고, 그런 문화 속에서 더 많은 성장을 이뤄내는 경우가 많은 것은, 차라리 처음부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각자가 가장 일을 잘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구조’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렇게 다양한 다른 모습이 드러나는 지점은 일이 어려워지는 순간이 아닌, 일이 잘되는 순간들 이었습니다. (어쩌면 다행히도 아직 그렇게까지 힘든 적이 없었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각자가 지닌 다양한 모습 안에서 서로의 욕망과 비전이 교차하면서 가장 극명하게 각자가 가진 문제 정의와 그에 대한 해결책이 다르게 나오며, 그로 인해 이해관계가 변하는, 즉 다시 말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커지는 시점에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일은 사람을 통해 하지만 ‘사람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를 하는 존재’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최근 보고 있는 SKY 캐슬의 한 대사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일지라도, 사람이 내리는 판단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설령, 숫자를 바탕으로 한 결정일지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우선 순위 아래, 수많은 제약조건 아래, 다양한 기회비용을 고려하며 이뤄지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차원적인 것입니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닌 것을 깨닫는 순간, 스타트업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말의 의미 또한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보통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설득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설명을 들을 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다시 한번 “서있는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거야” 라는 말은 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들었던 Jeff Weiner 의 이 강의는 미국 버전의 “서있는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년간 가장 느낀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나 사람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각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혹은,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이 일의 중심에 있구나’ 라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성장을 했다면 이전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려야하고, 이전보다 더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비교를 제대로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타트업의 일상은 같은 문제를 2번 푸는 것도 아니고, 문제의 정답은 나와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전의 해결책이 최상인지 아닌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성장을 정의한다면, 그것은 문제를 더 정답에 가깝게, 혹은 빠르게 푸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것은 성장이라기보다는 숙련이라는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성장이라는 것을 문제를 푸는 것, 문제를 푸는 과정이 아닌 문제를 정의하는 것,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문제에 대해서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닌, 이전의 문제를 다르게 정의해보는 과정,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다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과정이 나의 성장을 구성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 한 해에는 아쉬움이 참 많았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기에, 어떤 일을 ‘처리’하는 것에만 시간을 쓰곤 했었고, 나를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이러한 성장을 위한 좋은 질문을 주고받거나 던질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 허락되진 않았고, 그런 아쉬움 가운데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는 2019년을 맞이하게 된 것 같습니다.

 

Outro: 나는 왜 스타트업에 있는가?

언젠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계속 하느냐”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4년간 어느 한 순간에도 사람이 힘들었지, 일이 힘들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많은 것들에 대해서 다시금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삶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스타트업으로 이끌어주신, 그 과정에서 만난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라도 감사인사를 드리며 2018년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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