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대표의 외로움

초기팀에 경험이 아예 없는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닥치는대로 하다보면 가끔씩 정말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적어도 대표나, 그에 준하는 코파운더 경험이 없다면 절대 모를 일들이 있는데,

– 회사가 크게 돈을 버는 거 같지 않는데 내 월급이 꼬박꼬박 잘 나오고 있고
– 내가 뭔가 회사에 사람을 소개하지 않는데 좋은 사람이 지원하고 있고
– 제품만 만들어놨는데 특별한 마케팅을 안해도 어디선가 유저들이 들어온다면

누군가가 갈아서 그걸 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줬음 싶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대표라고 생각해도 되고.. 요새 내가 ‘시니어’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채용 지원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보여주는 차트이다. 이 박스에서 당신은 무엇을 기여할 수 있나요?

(그래서 Khosla 할아버지는 functional hiring을 할 때에도, 이 사람을 hire 하면 다른 부분이 어떻게 개선될 지 상상해보며 채용 고민을 하라고 하셨나보다)

그리고, 나에게 주는 돈은 별로 없는 거 같은데, 회사의 런웨이는 왜 이렇게 빨리 줄어들지 싶을 때도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나가는 돈은 보통 연봉의 1.4배를 하면 된다. 연봉 6천을 고용하는 사람을 위해, 회사는 대략 8천4백만원 정도의 예산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숨만 쉬어도 돈은 나간다.

이런 것들을 척척해내는 훨씬 훌륭한 대표님들도 많겠지 싶지만, 사실 회사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는데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의)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주말에 일해도 즐거우니, 아직은 다행이다 싶고.

Kudos to BTS

매 번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혹은 답이 없는 이 일을 할 때마다 정말 매번 좌절스럽고 어렵다. 나도 사람이다보니 안개속을 걸어나가는 불안함과, 그 길을 걸어가는 서툰 내 모습을 비춰보며 좌절감을 느끼지만, 마치 ‘중독’ 같은 모습으로 이 일들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도파민 중독이라고 하기도 하고, 성취 중독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큰 성공을 거둔다면 아마 그 나름대로의 성취감이 어마어마 하겠지만, 우선 그 과정 자체가 ‘중독’스러운 모습이 있기도 하다. 정말 이 과정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오는 지배적인 감정은 (아마도) 자기혐오이다. (대부분의 성장과정은 비슷하겠지만) 먼저 내 위치를 알고, 그러한 자신이 부끄럽거나 속상한 감정 속에서 ‘오늘의 내가 내 인생에서 제일 멍청한 날이다’라고 긍정긍정 열매를 먹고 있지만, 그 과정을 잘 버티기 위해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vulnerable) 자아를 잘 다독여야 한다.

무명시절 동안 이렇게 하면 나를 좋아해줄까, 저렇게 하면 나를 좋아해줄까 고민했다고 하는 RM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고민이 진심이었구나 싶고, 어쩌면 이렇게 하면 나아질까, 저렇게 하면 나아질까 고민하는 내 자신이 오버랩되기도 하며, 그런 고민을 가사로 녹여낸 것을 보고 쉽게 플레이리스트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그 모든,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