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최근 저장한 일기를 보니, 생각보다 생각을 정리한 부분은 공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 감정토로에 가까운 일기만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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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확실성에 대한 역치가 높다. 하지만 모두가 나처럼 불확실성에 대한 역치가 높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팀원의 불확실성에 대한 감정노동 관리를 해야 한다.
  • 판단이 정확하기 위해서는 편견이 없어야 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믿어야 하기도 하다. 모두는 각자의 이해관계대로 이야기를 한다.

2주년

창업한 지 이제 2주년이 되었습니다. 정말 상투적이게도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른다는 것과 무엇을 상상해도 그것보다 몇 배 더 힘들다는 이야기 이외에도, 2주년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기록하려 남겨둡니다.

갓 1년이 지났을 때는, 사실은 많이 뿌듯했습니다. 적어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최선을 다했고, 빠르게 PMF를 찾기 위해 정말 닥치는대로 만나고, 선택한 도메인(부동산)에 대한 지식은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유저들은 응원해줬고, 좋은 덕담을 들려줬습니다.

그런데 또 1년이 지나고보니, 기대보다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꿈은 너무나 멀리 있었습니다. 1년이 지났을 때에는 조금만 노력하면 세상을 바꿀 것 같았는데, 우리 제품으로 사람들의 삶이 바뀔 거 같았는데, 또 1년이 지나버렸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되돌아보니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습니다. 왜 그 때는 몰랐던 것들을 지금 깨닫게 되었을까요? 3년이 지난 후에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싶어 이 글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면 이상한 것이다 (?)

더이상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려운데요, 회고하면서 다시 정리해보면 분명 다시 보아도 ‘잘못된 결정’을 내린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은 꼭 (기대에 못 미치는) 나쁜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결과라는 것이 내부요인 (팀 역량, 실행 능력 등) + 외부요인 (운 등) 의 총합이라고 하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인 내부요인을 점검해보는 것이 팀이 할 수 있는 최선이고 그 과정 중에서 들었던 생각은 ‘이상한 느낌이 들면 이상한 것이다’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결정은 부족한 정보와 불확실성 안에서 결단 (=risk taking)을 필요로 하는 과정 중에서, 적어도 ‘이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온 우주의(?) 데이터가 저한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1년 동안 가끔 저에게 보내지던 우주의 신호를 애써 흘려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면, 잘못된 결정에는 ‘회피’라는 기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까지 알아봤으면 괜찮겠지’, ‘이 정도 생각했을 때, 괜찮지 않나?’, ‘아마도 알아서 잘 하겠지’ ‘나는 이 분야는 잘 모르니까’ 라는 생각이 마음 속 불안이 자리하거나 할 때마다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하지만, 신뢰와 회피는 다른 기제입니다.

초기 스타트업 대표는 잘하지 못하는 것, 또는 해본 적 없는 것을 리드해야하면서도, 결국은 모든 일의 책임을 져야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계획하고 실행하지 않은 부분에도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잘 모르는 일을 리드하기는 어렵습니다. 스스로 배워서 실행하거나 혹은 팀원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전자는 마이크로매니징의 유혹이 있고, 후자는 위임과 신뢰라는 (허울좋은) 좋은 타이틀이 있습니다.

하지만, 알아서 잘 되는 것은 없고, (특히) 초기 팀에서 알아서 잘 되는 팀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개선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 그냥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믿고 맡긴다는 것이 때로는 회피가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신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 두개의 차이를 배워가는 한 해가 되었던 거 같습니다.

오버커뮤니케이션 역량

그렇기에 저는 어쩌면 지난 1년 동안 그동안 보고 싶지 않았던, 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는 한 해가 된 거 같습니다. 어쩌면 경험이 없던 역량이 빠르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 fast learner라고 생각해왔는데, 3년차에는 그걸 실제로 증명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거의 대부분의 회사에서 대표는 PO의 역할을 하고 있고, 본질적으로 대표는 PO일 수 밖에 없습니다. PO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에게도 결정과 책임을 미룰 수 없고’, 과정이 무엇이든 ‘결과를 내야 합니다’로 표현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목표한 결과와 상관없이, 그 과정 중에 전 팀원을 그 과정에 몰입하도록 설득하고 이끌어야 합니다. 이러한 몰입과 설득에는 1) 유저에 대한 이해와 공감 2) 팀 내 오버커뮤니케이션 3) 제품에 대한 감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위에서 저의 방어기제가 팀과 서비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마찬가지로, 제 역량 부족이 2)를 막았던 것 같고 3)에 대한 학습을 느리게 했던 것 같습니다.

오버커뮤니케이션은 정말로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고, 또 리더로써의 민낯을 드러낼 수 있는 과정이기에 어쩌면 회피하고자 했고, 그걸 팀원에 대한 신뢰라는 말로 덮어놓고 지냈던 것 아닐까 반성하게 됩니다.

Outro – 3번째 1년을 준비하며

처음 1년에는 부족한 저를 믿고 합류해준 팀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장 크게 느꼈다면, 두번째 1년에는 제 부족함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는 한 해가 되었네요.

한 발자국 내디디면 그 다음 발자국은 좀 더 편해지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첫번째 문제를 풀고나면 더 어려운 문제가 주어지는 것처럼, 매 번 주어지는 문제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정말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이 과정이 아직 즐겁습니다. 일에 압도(intimidated)되다가도, 도파민 이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저의 피드백 하나로 갑자기 행복해지기도 하고요. 살면서 제 스스로의 행복이 어떤 외부 요인에 이렇게 연동된 적은 없었습니다만, 이 과정이 적어도 저를 작년의 저보다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3번째 1년차 회고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한 해에도 열심히 몰입하고 현명하게 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