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over ‘WHAT’, and ‘HOW’

최근에 팀원 피드백을 주면서 1년 전 쯤 정리했던 이 포스팅이 생각나서 생각을 다시금 정리해본다.

이슈: To do list를 먼저 정하고, why를 생각하는 경우의 문제점


무슨 일을 할 지 정할 때, 일의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일의 순서가 결국 디테일을 결정하고, 큰 방향을 가르게 된다고 본다.

그렇기에 what을 정하고 그 다음에 why를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라, why를 먼저 생각하고 what을 정하는게 (거의 대부분) 더 전략적으로 나은 선택을 만든다. what을 생각하고 why를 정하다보면 (사람의 머리구조상) what을 설명하기 위한 why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이걸 똑같은 what을 도출하기 위한 두괄식적인 접근이라고 보면 곤란하다.

이 일을 왜 하는지, 해야하는지 고민하다보면 가장 본질적이고, 때로는 창의적인 what이 나오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고, 그게 전략적인 접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만들 것이냐’를 고민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겠다’라는 목표가 아니라, ‘왜 그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또는 ‘그게 왜 문제인지’에 대한 유저접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이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를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PO의 자질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 위의 피드백이 다시 필요한 팀원이 있어서,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전달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다시금 1년 전에 썼던 내용을 더 쉽고 이해가 갈 수 있는 버전으로 정리 중이다.

[예시]

저 포스팅을 작성하며 들었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우리 서비스의 기능 중 하나인 ‘주소입력 없이 자동인증’이었다. 당시 우리가 파악했던 문제는 ‘집주인 인증 시 주소 입력에서 이탈이 크다’라는 것이었다. 만약 이 당시에 우리가 빨리 To do list를 고민했다면 당장할 수 있는 선택지(그리고 쉽게 To do list를 뽑으라면 생각해낼 수 있는 선택지)는 ‘주소검색 엔진을 고도화한다’라거나, ‘더 다양한 주소 DB를 확보한다’ 등 상당히 작업량은 많으면서도 고민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인 ‘주소 입력을 어려워한다’ 라는 부분에 집중했고, ‘도대체 왜 주소입력을 어려워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WHY)을 던졌다. 약간의 필드리서치의 경험을 통해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냈고, 주소 입력에서 이탈이 많았던 유저들의 진짜 이유(root cause)는 ‘주소를 잊어버려 기억하기 어려워한다’였다.

다시말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주소검색 엔진을 고도화한다’라거나, ‘더 다양한 주소 DB를 확보한다’의 HOW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거기서부터 생각난 해결 방법은 ‘아예 주소 입력을 하지 않고 인증을 할 방법은 없을까?’ 였고, 결국 우리는 아예 주소입력을 하기 이전에 인증을 시켜버리는 방법을 가져오게 된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전환율은 급격하게 개선되었다. 그냥 주소엔진을 고도화하는 방법으로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그리고 유저에게는 더 쉽고 편한 방법을 제공하며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전환율을 빨리 올리기 위해 당장 검색엔진을 개선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히려 ‘아,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어’라며 빨리 해당 문제를 포기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당장 To do list를 세우고 일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정말 문제를 그렇게 간절하고 풀고 싶기에 To do list를 세우고 전파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왜’라는 질문을 하고 파고들어야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Why에 집중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무엇일까

Why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특히 어려운 문제일수록 더 그렇다. 그렇기에 반년 전에 의사소통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4단계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해서 팀원에게 공유했고, 이 방법은 무엇보다도 Why로 가기 전에 How와 What으로 생각이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한 사고의 툴로 권유할만하다고 생각된다.

잠시, 현상을 공유하고 거기서 5번만 WHY라는 질문을 Top grading 방식으로 질문하다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에게 간결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설명하지 못하는데 ‘그냥 원래 그렇다’거나 ‘그래야만 해’라는 것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와 법령 이외에는 없다.


[레퍼런스]

  • Simon Sinek ‘Golden Circle’도 비슷한 (하지만 완벽하게 같지는 않다) 사고 구조를 따른다
  • 5 Why – 5번 정도 Why를 물어보다보면, 문제의 본질을 깨달아 근본원인을 파악하여 해결할 수 있게 된다

The ‘why’ will guide the ‘what’ and the ‘how’

The design guru Tim Brown, CEO of IDEO, writes in Change by Design “Don’t ask what? ask why?” and continues: “asking ‘why?’ is an opportunity to reframe a problem, redefine the constraints, and open the field to a more innovative answer. […] There is nothing more frustrating than coming up with the right answer to the wrong question”

Complexity isn’t a vice

오늘 팀에서 조금 불편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었기에 복기를 위해 적어본다. 팀원 중 한명이 다음과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지속적으로 내 마음에 무엇인가 불편하게 느껴졌고, 이런 비슷한 패턴의 커뮤니케이션에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과거 사례가 있었기에 한번 어떤 부분에서 내가 불편함을 느꼈는지 복기해보려 한다.

1)오늘 *** 이슈가 있었어요 (= 사실)

2)*** 와 비슷한 패턴의 이슈가 발생하고 이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 의견)

3)이 원인은 *** 인 것 같아요 (= 판단)

4)그래서 당장 ***을 바꿔야/개선해야 해요 (= 판단)

이야기하다가 나온 불편한 지점을 곰곰히 복기해보니 내가 보통 이런 이야기의 흐름에서 잘 정제되지 않은(깊이 생각하지 않은 결론을)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1)과 2)까지는 충분히 issue raising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3)과 4)로 갈수록 레벨에 따라 ‘보이는 그림’이 다르고 판단하는 사람의 경험의 양과 폭이 다르기에 때로는 대답하기 쉬워보이지만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Don’t jump into the conclusion, because you might be wrong too fast.

이는 살면서 주니어 시절에는 3)이라고 판단했지만, 일하면서 경험의 폭을 넓혀가며 시니어 레벨이 되면 인과관계를 고려하는데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하는 복잡성이 더해진다. 그렇다고해서 결정을 미룬다는 의미는 아니다. 3)의 결론으로 가기 전에 ‘우리는 이 판단을 내리기 위해 ***와 ***를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혹은 2)를 좀 더 분석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때로 3)은 중요한 결정을 내포하는 경우가 많기에 (one way door decision) 그 원인을 잘 생각해보는 것이 더 좋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하는 친구들을 deep thinker라고 생각하고 내가 선호하는 타입의 사람인 거 같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사람이니 선호하는 타입의 사람이 있다)

관련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West wing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complexity isn’t a vice라는 대사가 나온다. 정말 멋진 대사가 아닌가)

Every once in a while… every once in a while, there’s a day with an absolute right and an absolute wrong, but those days almost always include body counts. Other than that, there aren’t very many unnuanced moments.

Outro

복잡한 내용일수록 문제에 집중해야 하고, 커뮤니케이션은 간결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은 간결할 수 없다. 누군가를 선동하기 위해서는 간결한 캐치프레이즈가 필요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항상 엄마가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이야기해주시곤 했는데 그 말이 계속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회사는 몇 달 간 계속 트래픽이 평균 20% 이상 상승하고, 계약 건도 증가하고, 좋은 협업 건도 많이 생기고 있다. 팀원들은 성장하고 있고, TIPS도 한번에 선정되어 수고로움을 덜었으며, 우리가 고대하던 분야에서의 규제 샌드박스 기회가 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신경쓰지 않으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는 일의 갯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주니어 팀원들은 아직 주니어 레벨이다. 일부 팀원은 걱정이 되는 이슈를 갖고 있으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팀을 위해 시니어 팀원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점이며, 체력이 고갈되고 있다. 체력이 고갈되는만큼, 여유의 버퍼가 낮아져 마음의 평정이 쉽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좋은 오퍼를 낼 만한 시니어 팀원은 보이지 않고, 이제 어디서 귀인을 만날지 사방으로 기도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펀드레이징을 도와주겠다는 좋은 투자자와 함께 개발팀을 전반적으로 같이 봐주겠다는 좋은 멘토님도 계신다. 또 어떻게든 지나가고 이겨내겠지 싶은 7월의 중순이다.

글 잘 쓰는 방법

유학가서 처음으로 영미권 교육을 받았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글쓰기에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것이었다. 500 words memo 글쓰기를 훈련하면서, 문단을, 문장을, 단어를 이렇게 선택하고 훈련해야하는구나 싶어서 그간 이런 훈련을 받지 못했던 시절이 아쉽기도 하고 스스로를 깨닫는 시간도 되어 좋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과 글의 힘이 회사를 이끌어나가는데 정말 중요한 역량임을 깨달으며 주말간 생각을 정리하다가 이 영상을 발견해서 그간 생각했던 부분을 위의 영상과 함께 정리해 본다.

글을 잘 쓰는 원칙 – 간결하고, 쉽게 쓰기

  • 짧은 문장
  • 문단의 첫 문장은 짧게 – 생략할 수 있는 단어는 생략하고 간결하게 표현하기
  • 간단하게 쓸 것 – 부정의 부정형 x – 꼬아서 쓰지 말기

clean, straightforward, as simple as possible

글을 잘 쓰는 기본 – 독자의 입장을 고려

어떤 경우에도 간결하게 쓰라는 메시지는 사실 독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말의 다른 버전이다. 한정된 머리의 CPU를 생각하면 최대한 적은 단어로, 정확하게 뜻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가능하다면 쉽게 쓰는 것이 좋지만 글자의 제한이 있다면 어려운 단어 – 하나의 단어 안에 많은 컨텍스트를 담는 – 를 쓸 수 밖에 없다.

다만 쉽게 쓰더라도, 독자가 정말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어의 선택과 조합이 매우 중요하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 문단 내 문장의 배치 모두 중요하다. 퇴고는 이 부분을 살펴보는 것을 위주로 진행한다.

글을 잘 쓰는 방법 – 연습과 퇴고

실제적으로 연습, 그리고 또 연습이 필요하다. 우선 생각하는대로 적지만, 생각은 늘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기도 하고 비약이 생기기도 한다. 글로 적고 다시 살펴보다보면 반드시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사실 퇴고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좋은 글을 처음부터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만 있다면 정말로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많은 경우 마스터피스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뜻이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는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안에서 좋은 글로 팀 내에 커뮤니케이션 해야하기 때문이다.

Outro

사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가장 필요한 준비는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 위의 영상에서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글을 쓰는 시작조차 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다 – 생각을 빠르게 잘 정리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주니어의 성장 – 회복탄력성, 멘탈, 그리고..

우리 팀 구성원의 50%는 우리 회사가 첫 회사이다. 어쩌면 회사라는 것이 어떤 곳인지 피상적으로 듣다가 처음으로 회사생활이라는 것을 해보는데서 오는 두려움, 긴장, 그리고 스트레스가 함께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이 부분을 1:1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다만 아래의 내용은 첫 회사를 들어간 분들 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주니어로 생각될 수 있는 모든 분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쉽게 포기하지 않기

실제로 일을 하다보면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99%이다. 특히, 모든 것들 책으로 배우거나 (book smart), 이론만을 접하다 실제로 일을 하기 위해 진행하다보면 잘 안 풀리는 경우가 많다. 기획을 해보기 위해 책을 봐도 제대로 이해가 될 리 없고, ‘아 나는 재능이 없나?’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럴 때마다 하는 피드백이 있다 ‘매니저인 제가 포기하지 않았는데, 왜 본인은 스스로를 포기하죠?’

대부분 ‘아, 나는 재능이 없나봐’라고 생각하는 지점은, 보통 어떤 break through를 만들어야 하나 그 지점까지 자신을 몰아붙이고 훈련할 용기와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는 의지력이 없어서 못해요’라고 이야기라는 경우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대부분 ‘저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의지력도 재능이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만..) 물론 정말 재능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경우 보통 매니저가 먼저 포기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팀원에게 자기 귀중한 리소스를 쏟아가며 성장을 도와줄 매니저는 없다.

아, 다시말해 어떤 특정한 일을 매니저가 다시 시키지 않는다면 그건 포기했다고 보면 된다. 알려줘서 일을 맡길 때마다 일이 배가 되어 돌아온다면 그 사람에게는 더이상 일이 가지 않는다. 계속 나에게 일이 들어온다면 그건 어떻게든 돌파해내라는 신호이고, 믿음이다. 만약 그러한 매니저의 믿음을 좌절시키고 싶지 않아 도전하지 않는다면 더이상의 성장은 없다.

어떤 부분에 좌절해야하는지 분명하기 알기

1:1을 하다보면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 혹은 ‘일을 처리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직 여러가지 하드스킬이 숙련 단계로 올라오지 않은 주니어 시절에는 그냥 맡겨진 일을 해내는 시간 자체가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주변을 보면서 ‘왜 나는 이렇게 오래 걸리지?’ 혹은 ‘왜 나는 잘 안되지?’라고 생각하고 좌절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럴 경우, 꼭 해주는 이야기는 ‘좌절할 일(?)에 좌절하는 것이 좋다’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상당히 이상하게 들리지만 주니어의 경우 좌절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굳이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모든 일의 처음은 항상 어렵고 일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된다. 다시 말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스킬에 대해서 스스로를 과도하게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누구나 처음은 어렵다.

물론 새로운 것들을 빠르게 배우는 학습 능력이 좋다면 더할나위 없이 빠르게 성장곡선이 보이지만, 보통 그런 성장곡선은 어떤 지점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경우, ‘지난 주의 나’와 ‘이번 주의 나’를 비교해보라는 사고실험을 한다.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스킬은 성장이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이 지나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들 (어쩌면 히든포텐셜의 character) 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간이 지나도 리더십은 자연스럽게 함양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났다고, 연차가 있다고 그 이유만으로 리더를 맡기는 회사는 리더십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편이고, 안타깝게도 대개 그런 경우 리더십은 실패하기 쉽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숙련되어 가는 부분들이 더 나아져야만 하긴 한다. 그리고 좋은 주니어라면 그 속도가 빠르고 가속도가 붙어야 한다 (fast learner) 그게 어쩌면 기본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도 불구하고 숙련도가 빠르게 올라오지 않는다면, 다음의 순서대로 물어보면 방법을 찾기도 한다. 첫번째로 ‘피드백 루프(loop)가 충분히 짧은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배운 것을 충분히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이 3가지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숙련도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쉽게 말해 투입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다시말해 본인이 엄청난 천재가 아니라면, 20시간 노력하는 사람을 10시간 노력하는 사람이 이기기 힘들다.

좀 가혹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는데, 조금 노력해보다가 접으려는 주니어에게 주는 가장 냉정한 피드백은 ‘본인은 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나요?’이다. 남들은 20시간 걸려서 익숙해지는 것인데 무슨 근거로 10시간 만에 익숙해지려 하는가. 차라리 본인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더 많이 노력할 때 (피드백 루프는 짧으면서) 성장 곡선이 빨라진다.

신뢰기반의 피드백

사실 피드백을 받는 것이 쉬운 사람은 없다.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어서 피드백을 원하면서도 피드백 시 멘탈적으로 무너지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1:1을 하며 스스로 회고하며 울먹이거나 눈에 띄게 말이 없어지는 경우가 그러했다. 그런데 오히려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피드백을 받을 때 이런 마음만 조절할 수 있다면 오히려 성장에 대한 욕심이 있기에 충분히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다.

피드백을 받는 마음가짐은 내가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왜 피드백을 받는 것이 어려울까? 피드백 자체가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 무엇이 부족하고, 개선해야 한다라는 것이니 – 무엇보다도 피드백은 ‘주는 사람’이 정말 중요하고, 그 다음에 ‘주는 사람과 나의 관계’가 또 중요하다. 예를 들어, 주는 사람의 전문성이 없다면 큰 의미없는 (오히려 노이즈가 될 수도 있는) 피드백이 나올 것이고, 주는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면 나쁜 의도를 갖고 피드백이 전달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주는 사람에 대한 검증 및 신뢰관계가 정말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아쉽게도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에서 최근 유명해지며 피드백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졌다.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의도를 갖고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의도는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그렇기에 ‘의도’를 의심하며 피드백을 부정하기 보다는, 전달하는 피드백 ‘내용’이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만 생각해보면 도움되는 피드백을 얻을 수 있고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좋은 마음 가짐을 만들 수 있다.

Outro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게 된 이유를 몇 가지 곱씹어 본다면 최근에 채용 시 하나의 환상을 갖고 있던 부분에서 벗어나며 – 갑자기 급성장한 회사의 구성원이 대부분 그 성장경험에 대해 높이 평가받고는 하는데,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그냥 그 구성원 중의 한명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구성원이 해당 회사의 성장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 생각을 정리해보며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오히려 회사의 성장이 개인의 성장을 앞지를 때, 그 성장의 귀인 (attribute) 를 개인으로 귀결시키며 잘못된 메타인지가 생기는 경우, 심하게는 메타인지가 망가지며 에고가 생기는 경우를 보았기에, 앞으로 그간 어떤 매니저를 만나 어떤 피드백을 들었는지를 채용에서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며 이 글의 마무리를 한다.

모두가 다 나

내 첫 개인 이메일은 (더이상 쓰지 않지만)everyjiyeon으로 시작했고, 그 다음 내 개인이메일 주소는 ‘모든송지연’을 뜻하는 말이다. 내 안에 나는 너무나 많고, 매일 나는 나와 싸우고, 화해하고, 다독이고, 실망하고, 응원하고, 사랑하기도 한다. 아마 모두가 그러하겠지만, 어쩌겠어. 아니, 어쩌라고.

작년 가을 쯤이었던 것 같은데 팀원 한명과 1 on 1을 할 때 ‘대표와 연예인은 참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는 면도 비슷하고, 업무상 내면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 어려운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물론 어느 정도는 표현을 하겠지만, 특히 전이될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별로 없을거에요.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감정을 담지 않되, 감정을 표현하게 되겠죠.’ 라고 이야기했던 게 종종 기억난다.

오늘의 노동요

두개의 나인 나는 마음이 하나라서, 당신에게 나는 하나일 거에요.

2023 회사 회고

올 해의 회고를 진행하며, 한국프롭테크가 팀으로 배운 내용에 대해 정리해보았습니다. 2024년에는 더 많은 배움과 성장이 있기를 바라며 한 해동안 여러가지로 응원하고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든 인연은 소중하다

올 한 해 우리를 찾아준 유저, 고객들을 살펴보다보니 거의 대부분이 누군가의 소개를 통해 우리를 알게되고,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다. 직장 동료의 추천, 혹은 기존 고객의 추천을 통해 서비스를 알게 되었고 아직 적극적으로 외부에 서비스를 알릴 기회를 갖기 어려운 우리같은 작은 팀에게는 (정신적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누군가 우리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느낌은 초기 제품팀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큰 응원이 되는 것 같다. 그렇기에 한 분 한 분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우리를 소개하고 우리가 어떤 미션 아래 일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당장의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다고 하더라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한 해가 되었다.

그리고, 팀 리빌딩을 할 시기에 도와준 이동욱님, 한기용님, 고재필님을 통해서 정말 큰 도움을 받았다. 사실 세 분에게 처음 고민을 털어놓을 때 외부의 누군가가 우리 문제를 해결해줄거라는 기대보다는, 우리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적어도 내부에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만 있었다. 세 분 모두 진심어린 조언을 주셨고, 내부에서도 오픈된 마음으로 조언을 들었던 덕분에 2023년 상반기보다는 하반기, 그리고 하반기에서도 여름보다는 겨울에 가까울수록 ‘일이 즐겁다’, 그리고 ‘몰입된다’라는 내부의 이야기가 들려오게 되었다.

진짜 고객을 만드는 것은 내부의 끈기

B2B로서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은 상당히 외부의 변수들이 존재한다. 우리의 이슈가 아니라, 해당 조직 내에 이슈 (예. 재건축 추진 중단 등) 으로 인해 무기한 연장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예상치 못하게 새로운 서비스의 도입을 반대하는 보수적인 목소리 때문에 계약 직전에 좌절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올 한 해 큰 기대를 안하고 서비스의 업데이트 된 내역들을 꾸준히 공유했던 일부 단지들에서 예상치 못하게 다시금 연락이 오는 것을 보면서 B2B에서 휴면 (dorment) 고객을 살리는 것은 내부의 끈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광고에서 첫번째 터치포인트에서 바로 전환을 이끌어내는 경우는 없는 것처럼, 리소스가 많이 들지 않는 고객 접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한 해였다.

제품은 팀원 모두가 만들어내는 가치의 합

어쩌면 올 한 해는 제품에 대한 깨달음 이외에도 팀으로써의 깨달음도 많았었는데, 무엇보다도 작은 팀으로 효과적으로 일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효율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효율적인 것과 효과적인 것은 항상 페어로 다니는 단어가 아니며 종종 효과적인 것은 효율적이지 않거나 효율적인 것은 효과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 모든 제품의 개발 과정에서 전 팀원이 몰입하고 제품에 관심을 가지는 과정이 의미있다고 배우게 되었다. 물론, 제품에 대한 결정을 모두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개발자라고 하더라도 내가 만든 제품이 유저의 어떤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느냐를 관심갖고 지켜보는게 제품 자체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워크의 부활 – 신뢰라는 것은 서로를 성장시키려는 마음

올 해에는 큰 에픽 단위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워케이션에서 팀원들에게 같은 책을 같이 읽고 이야기 하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가장 첫 책으로 팀워크의 부활 (5 dysfuctions of a team)을 선정했다. 이 책은 한기용님으로부터 추천받아 읽고, 여러 번 읽으며 우리 팀을 돌아보게 되었던 책인데,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을 울렸던 것은 다음의 구절이었다.

‘신뢰’란 모두가 내 편이라는 생각과는 다른 겁니다. 서로 신뢰한다고 해서 상대에게 압박을 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뢰란 팀 구성원이 언제 동료를 압박해야 할 지 그 때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팀에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압박을 하되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한다는 마음가짐으로요.

팀워크의 부활, P.307

팀빌딩이 왜 필요한지, 개인적으로 다가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많은 부분 간과했었지만, 회사란 어쩌면 많은 시간을 보내는만큼 회사라는 공간은 각 팀원에게는 자아실현을 하는 공간, 자기효능감을 느끼는 공간이자 관계를 맺는 곳이고, 팀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감정적인 유대감이 서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션과 비전은 선택하는 것 – 우리가 우리를 믿는 것

올 한 해 감사하게도 이런 저런 상(부동산원, 국토교통부장관상)을 수상할 기회와 과제 발표가 있었는데 종종 발표 평가 중간에 너무 속상한 피드백을 받기도 했었다. ‘누가 그 서비스를 쓸까요?’ 혹은 ‘시장이 그렇게 빨리 변할까요?’라고 레거시가 강한 시장의 특성 상, 서비스의 방향성과 필요에 대해서 동의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시장에 잘 침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피드백이 많았다. 물론, 여전히 믿지 않는 유저, 시장참가자들도 다수 있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믿지 않는다면, 이 방향으로 시장이 변할 거라고 믿는다면 한번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이런 고민 끝에, 5월에 비전/미션/서비스 로드맵에 대해서 러프하게나마 그림을 그리고, 유저의 피드백을 열심히 들으며 문득 11월에 하반기 점검을 위해 다시금 해당 문서를 열며 그간 ‘도시정비사업을 빠르고 투명하게’라는 미션 아래 세워놓은 개별적인 개발 로드맵을 11월까지 거의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놀랍게도 5월에 중요하다고 생각한 순서대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실 이 경험은 너무 놀라워서, 내부적으로 회의를 하며 ‘6개월 간 이 문서를 보지 않았는데, 그 때 중요하다고 한 순서대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며 우리의 방향은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우리의 앞으로 고민은 ‘속도’를 어떻게 높여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이 제품으로 어떻게 수익화를 성공적으로 할 지가 될 거 같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우리를 믿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믿어줄 것인가, 그리고 우리를 먼저 믿어준 고객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물론 레거시가 강한 이 시장에서의 불신, 그리고 아직은 변화의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다는 회의감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 이겨내야 하는 것이고, 내년도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직의 모습은 정답이 없다 – 리더십과 시니어에 대한 환상

리더십과 시니어에 대한, 더 나아가 팀의 구조에 대해서 완전히 생각을 바꾼 한 해가 되었다. 사실 정답은 없는 문제이지만, 우리 상황에서의 최적화된 구조는 있을 것이고, 완전히 새로운 팀 빌딩의 관점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 고민과 깨달음은 대표인 나만의 깨달음일 수도 있겠지만, 초기 스타트업에서 대표의 깨달음은 곧 회사의 깨달음으로 이어지기에 같이 포함시켜 정리해본다.

오히려 초반에 경력이 많은 시니어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려고 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간 ‘연차 중심’으로 생각했던 시니어와 리더십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탈피하게 되기도 하였다. 다시금 초기 팀에 더 맞는, 좋은 멤버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을 정리하게 되기도 하였다. 오히려 경력이 좀 더 많은 사람에 대한 일종의 환상에서 벗어나면서 좋은 풀의 멤버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2024년에 대한 희망을 채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Outro

올 해 팀 회고를 진행하며 확실히 2022년보다는 나은 팀과, 나은 제품, 그리고 더 나은 내가 되었다 느껴졌는데 아쉽게도 그만큼의 수치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2024년에는 이러한 질적인 성장 뿐만이 아니라 양적인 성장에 대해서도 즐겁게 회고할 수 있기를 바래보며 이번 회고를 마쳐봅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

어제 회사를 궁금해하던 심사역 한 분에게 소개를 마치고 같이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나에게 ‘창업하고나니 무엇이 좋은가요?’라고 질문을 했다. 놀랍게도 (or not surprisingly) ‘모든 게 다 제 탓이 되어서, 마음이 편합니다.’ 라는 대답이 나왔다. (사실 대답을 해놓고도 스스로도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이야기해놓고 보니, 정말 그게 현재 (나에게는) 창업 후 가장 좋은 부분이 맞는 거 같다. 팀원이 기대보다 별로였다면, 채용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내가 문제였고 – 내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거나, 혹은 내가 온보딩을 잘못했거나 – 결국 모든 문제의 root cause는 나이기에, 내가 나아지고 성장하면 되는 문제이기에 모든 문제에는 복잡한 원인이 없다.

문득 종종 외부에서 내가 다른 분들에게 이야기했던 ‘초기 회사의 경우, 대표의 장점은 회사의 장점이 되고 대표의 단점은 회사의 단점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라고 했었는데 정말 같은 맥락의 생각을 늘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분은 그 대답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뭐 다른 분들에게 억지로 꾸며 이야기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스토리텔링은 authenticity로부터 나온다 생각하기에 꾸밀 생각도 없기도 하다. 창업 3년차를 가며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든다. 돈을 넣는 투자자든, 혹은 커리어를 거는 팀원이든 정말 대표를 믿고 간다는 말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그 한 사람의 장단점이 녹아있는 단계이니까 아마도 그러하리라. 그래, 나부터 잘하자.

의사결정 방법

나는 집단지성을 많이 신뢰하지 않지만, 의사결정 체계로서 다수결은 종종 의미있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굉장히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우리가 하는 결정에는 ‘더 나은 결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자기결정권’이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재건축에서는 소유주의 동의율을 통해 ‘다수결’을 통해 진행한다. 일견 이상해보일 수도 있는 것이, 일반 소유주 입장에서는 도시정비사업 추진을 위한 복잡한 관련 법령을 알기도 어려우며 설계 및 감리 등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사항에 대해서 특정 전문가가 아닌 다수의 의결을 따르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내지 않을 수도 있음을 너무나 직관적으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가라고 해서 항상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관계 조정만 된다면 전문가가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조합방식이 아닌 신탁방식의 도시정비사업을 최근 정부에서 더 장려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추측하건대, 공동주택에서 해당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한 토지를 개발하는 사업의 성격 특성 상, 자기결정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에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토지 지분만큼의 의결권을 가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던 것 같다. 집이라는 대상을 투자로 본다면 자기가 투자한 지분만큼 의결권을 가지는 것 또한 너무 자연스러운 전개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싸움이 나더라도, 플랫폼인 우리는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 되었다. 누가 더 나은 의견인지 올바른 판단인지 제 3자는 알 수도 없을뿐더러, 판단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플랫폼의 역할은 다수결의 의견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지, 누구의 의견이 누구보다 맞다 틀리다를 판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도시정비사업을 진행하며 조합 내의 의사결정 방식과 체계가 현대정치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어쩌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맥락과 이런 점에서 상통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회사의 의사결정 – 수평적인 회사 문화와 수직적인 의사결정

그런데, 회사 내에서의 의사결정은 구성원의 ‘자기결정권’보다는 ‘더 나은 결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모두가 같은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회사가 ‘팀’으로 내리는 결정은 회사 내의 구성원 한 사람이 가진 능력보다 더 훌륭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팀’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이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기에 (보통 이런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많이 해왔던 많은 글로벌 IT회사에서) 수평적인 회사 문화를 견지하면서도 수직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런 고민에서 나온 것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이 많은 경우 곡해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종종 채용 인터뷰 시, 이직 사유를 물어볼 때 ‘의견을 개진하라고 했는데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점차 조심스러워지는데 – ‘왜 반영이 되지 않았나요?’라는 질문을 대개 follow up으로 하고는 있지만 – 회사는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부분을 많은 인터뷰 참가자분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견 개진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freedom of speech) 모든 사람의 능력과 책임은 같지 않기에 의사결정의 체계(chain of command)가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뛰어난 의견이 계속 개진되고 있음에도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회사의 리더와 조직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회사의 경우 의사결정이 수직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떤 식으로든 만들고 있다. 이는 일하면서 가능하다면 구성원들의 authority와 ownership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정말 의미있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리더가 더 많은 결정을 한다는 것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책임을 진다는 것은 가능한 모든 리스크를 계산에 넣고 승부를 봐야 한다는 뜻이며 그렇기에 수평적인 문화를 통해 의견을 받는 것은 가용한 모든 자원 안에서 팀이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