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 방법

나는 집단지성을 많이 신뢰하지 않지만, 의사결정 체계로서 다수결은 종종 의미있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굉장히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우리가 하는 결정에는 ‘더 나은 결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자기결정권’이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재건축에서는 소유주의 동의율을 통해 ‘다수결’을 통해 진행한다. 일견 이상해보일 수도 있는 것이, 일반 소유주 입장에서는 도시정비사업 추진을 위한 복잡한 관련 법령을 알기도 어려우며 설계 및 감리 등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사항에 대해서 특정 전문가가 아닌 다수의 의결을 따르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내지 않을 수도 있음을 너무나 직관적으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가라고 해서 항상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관계 조정만 된다면 전문가가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조합방식이 아닌 신탁방식의 도시정비사업을 최근 정부에서 더 장려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추측하건대, 공동주택에서 해당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한 토지를 개발하는 사업의 성격 특성 상, 자기결정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에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토지 지분만큼의 의결권을 가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던 것 같다. 집이라는 대상을 투자로 본다면 자기가 투자한 지분만큼 의결권을 가지는 것 또한 너무 자연스러운 전개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싸움이 나더라도, 플랫폼인 우리는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 되었다. 누가 더 나은 의견인지 올바른 판단인지 제 3자는 알 수도 없을뿐더러, 판단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플랫폼의 역할은 다수결의 의견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지, 누구의 의견이 누구보다 맞다 틀리다를 판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도시정비사업을 진행하며 조합 내의 의사결정 방식과 체계가 현대정치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어쩌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맥락과 이런 점에서 상통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회사의 의사결정 – 수평적인 회사 문화와 수직적인 의사결정

그런데, 회사 내에서의 의사결정은 구성원의 ‘자기결정권’보다는 ‘더 나은 결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모두가 같은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회사가 ‘팀’으로 내리는 결정은 회사 내의 구성원 한 사람이 가진 능력보다 더 훌륭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팀’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이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기에 (보통 이런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많이 해왔던 많은 글로벌 IT회사에서) 수평적인 회사 문화를 견지하면서도 수직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런 고민에서 나온 것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이 많은 경우 곡해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종종 채용 인터뷰 시, 이직 사유를 물어볼 때 ‘의견을 개진하라고 했는데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점차 조심스러워지는데 – ‘왜 반영이 되지 않았나요?’라는 질문을 대개 follow up으로 하고는 있지만 – 회사는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부분을 많은 인터뷰 참가자분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견 개진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freedom of speech) 모든 사람의 능력과 책임은 같지 않기에 의사결정의 체계(chain of command)가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뛰어난 의견이 계속 개진되고 있음에도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회사의 리더와 조직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회사의 경우 의사결정이 수직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떤 식으로든 만들고 있다. 이는 일하면서 가능하다면 구성원들의 authority와 ownership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정말 의미있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리더가 더 많은 결정을 한다는 것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책임을 진다는 것은 가능한 모든 리스크를 계산에 넣고 승부를 봐야 한다는 뜻이며 그렇기에 수평적인 문화를 통해 의견을 받는 것은 가용한 모든 자원 안에서 팀이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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