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순간순간 느끼는 모토(?)들이 있는데, 요새 내 상태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말로 종종 떠오르는 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지, 어쩌겠어. 감정이 사치라는 말이 느껴지는 주말.
살다보면 순간순간 느끼는 모토(?)들이 있는데, 요새 내 상태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말로 종종 떠오르는 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지, 어쩌겠어. 감정이 사치라는 말이 느껴지는 주말.
안그래도 어려운 커뮤니티 서비스를 만드는 가운데, 폐쇄형 커뮤니티는 더 난이도가 높은 서비스입니다. 이전에 살펴보았던 커뮤니티 서비스를 만들고 성장시키는 공식 가운데, 폐쇄형 커뮤니티에 적용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초반 유저 유입의 바이럴 효과를 만들어내기 매우 어렵습니다.
폐쇄형 커뮤니티는 그로스 레버를 만드는데 크게 몇 가지의 고민이 있습니다. 제일 처음, 바이럴 효과를 만들기 어려운 허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폐쇄형 커뮤니티의 경우 폭발적인 성장이 일반적인 커뮤니티에 비해 배로 어려우며 (링크), 폭발적인 성장이 어려운만큼 커뮤니티 자체의 네트워크 효과의 강력함에 도달하는 시간 (critical mass) 까지 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쇄형 커뮤니티는 그 자체의 특성에서 오는 큰 장점(링크)으로 인해 네트워크 효과가 더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1) 정말 만나기 힘든 유저가 모여있어 (네트워크 자체의 희소성) 1명의 유저가 들어올수록 더 큰 가치(네트워크 효과)가 생긴다고 볼 수 있으며 2) 타겟된 네트워크 참여자로 인해 더 강한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폐쇄형 커뮤니티는 기반이 잘 잡히면 아래의 샘 알트만의 이야기의 2가지 고민에 크게 부합합니다.
결국, (유저가 느끼는 가치) * (전파 용이성) = (플랫폼의 가치)인 셈인데, 폐쇄형 커뮤니티의 경우 초반에는 전파 (=바이럴) 에 힘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네트워크의 가치가 생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모여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면, 누군가를 만나 해결해야 하는 목적이 있다면, 설령 네트워크 없이도 그 목적 달성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쉽게도 폐쇄형 커뮤니티의 경우 네트워크 안에 네트워크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모더레이터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네트워크가 아닌 별도의 솔루션을 통해서라도 본질적으로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려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다시 말해, 폐쇄형 네트워크 초기에는 바이럴에 힘쓰기보다는 본질적으로 폐쇄형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모이는 사람들의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하다보면 네트워크 자체의 가치가 올라가며 이 부분이 바이럴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네트워크의 가치가 극대화된다고 하더라도 바이럴이 되지 않으면 결국 커뮤니티를 위해 들어온 유저는 떠납니다. 그렇기에 폐쇄형 커뮤니티의 네트워크 가치를 어필하며 바이럴 효과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이럴 효과를 살릴 수 있는 방법에 고민했던 부분에 대해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일을 좋아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이것도 업무에 들어갈 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주말에는 재미있어서 일 관련된 책도 읽고 정리도 한다. 웹툰도 보고 넷플릭스도 보지만, 그것보다 이게 더 재미있다. 나에게는, 일과 관련된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많지 않다.
얼마전 마루에서 대표들의 1박2일 워크샵을 하며, 초기스타트업의 대표이사로써 할 수 있는 정말 솔직한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공감이 되었던 부분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이야기하거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종용하는 것을 죄악시, 다시 말해 노동(일)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가 무섭다’라는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이전에도 한번쯤 정리해봤던 거 같은데, 사람들이 일과 관련된 삶은 크게 Employer vs. Employee 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결국 고용을 당할 것이냐, 고용주가 될 것이냐의 관점에서만 살펴보면 고용되었을 때의 내 local maximum는 분명하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것이다.’ 어쩌면 ‘소확행’을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인생 전체의 global maximum일까? 아니, 조금 더 관점을 확장해서 보면 우리는 늘 ‘내 인생’의 employer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어떤 커리어를 하게될지 선택하게 되고, 그 중에서 직장을 선택해 지원하게 된다.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고자 한다면, 좀 더 자유롭고자 하면 내 경제활동에서의 내가 어떻게 이끌어나갈까를 생각하는 것이 global maximum라고 생각한다.(센드버드 김동신 대표님도 유튜브채널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삶은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 당한다.
물론, 모두가 주체적으로 살 필요도 없다. 근본적으로 일을 좋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성향의 문제이다. 어떤 삶을 선택할지의 개인의 자유와도 관련이 있다. 다만 적어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 내가 내 커리어를 좀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한 노력이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으로 매도되는 것이 안타깝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최선을 다하는, live up to the fullest하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하는 노력은 언젠가는 개인의 삶에 pay off 된다. 인생은 속도와 방향인데, 방향이 맞다면 그 선상에서 노력은 결국 그 사람의 성장을 배신하지 않는다. 적어도 매니저로써, 한 조직의 리더로써 최고는 직원들을 성장시키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매니저로써 하기 제일 어렵지만, 어쩌면 꾸준히 해야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직원들에게 성장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는 것이다.